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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itle: "AUX: 더 극단적이고 서늘한 UX"
description: "AI가 사용자가 되었을 때 UX는 무엇이 되는가"
date: 2026-01-17
tags: [a11y, ux, design-system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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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 최근 디자인 시스템의 MCP 서버를 구축하며 **UX의 본질**에 대해 다시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.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한 것으로 AI 시대에서 개발하고 설계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.


## 사용자는 여전히 사람인가

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줄곧 사람을 위한 설계를 해왔습니다. 사람이 화면을 어떻게 인지하는지, 어디서 실수하고 또 어떻게 학습하는지를 확인하면서 **인간 친화적인 인터페이스**를 설계해온 것이죠.

하지만 최근 디자인 시스템의 정보를 제공하는 MCP(Model Context Protocol) 서버를 구축하며 꽤나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. 설계한 구조를 가장 먼저,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 소비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**AI 에이전트**였기 때문입니다.

생각해보면 에이전트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.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 인공지능이 더더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습니다. 그 과정에서 정보를 조합해가며 사람 대신 판단을 내리는 **중간 사용자**의 역할을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담당하고 있습니다.

이러한 상황에서 **UX는 사람만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하는 걸까요?** 

## AUX(Artificial Agent as a User Experience): 에이전트를 위한 경험

저는 이 지점에서 **_AUX(Artificial Agent as a User Experience)_**라는 개념을 제안하려고 합니다. **AI 에이전트가 시스템의 의도를 오해 없이 이해하고, 도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계적 사용자 경험**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. 

최근 구축한 디자인 시스템의 MCP 서버도 AUX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. **에이전트가 활용하기 편한 UX를 고민하며 설계되었기 때문**입니다. 결국 컴포넌트와 디자인 토큰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보의 구조와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 MCP 서버의 본질인 셈입니다. 이러한 점에서 에이전트가 더 쉽고 정확하게 정보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들을 구조화하고 조합하는 작업은 겉보기에는 **사람을 위한 UX 설계와 비슷**해 보이기도 합니다.

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UX는 전혀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. **사람의 UX가 사용자의 감각과 경험을 전제로 해석을 돕는 설계라면 AUX는 해석 자체를 최소화해 오해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설계**에 가깝습니다. 이 차이는 단순한 구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됩니다.

| 사람의 UX | 에이전트의 UX(AUX) |
|------ | --- |
|감각, 맥락, 경험 기반 | 구조, 제약, 규칙 기반 |
|애매함을 **유연하게** 해석함|애매함을 **멋대로** 해석함(할루시네이션 발생)|
|탐색하며 이해를 확장함|탐색 자체가 비용이자 오류|
|일관적인 것은 편한 것|일관적인 것은 안전한 것|
|감각, 시각적 애매함이 없는 것이 좋은 UX|의미적, 논리적 애매함이 없는 것이 좋은 UX|
|오류는 유연하게 대처됨|오류는 증폭됨|

## UX와 AUX는 정말 대척점에 있을까

이렇게 놓고 보면 사람의 UX와 AUX는 마치 서로 반대편에 있는 개념처럼 느껴집니다. **사람의 UX는 유연함을, AUX는 엄격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.**

하지만 이 구분은 어디까지나 단순화된 프레임인 것 같기도 합니다.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대비는 UX와 AUX의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 **서로 다른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설계 전략의 차이에 가깝습니다.**

사람을 위한 UX에서 "유연함"은 종종 미덕으로 여겨집니다. 사용자가 스스로 맥락을 보완하고, 애매함을 경험으로 메우며,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. **그러나 이 "유연함"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.** 같은 인터페이스를 두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면서 일관되지 않은 사용 경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.

**AI 에이전트에게 이 여백은 더 위험합니다.** 에이전트는 애매함을 맥락으로 보완하지 않고 가장 그럴듯한 방식으로 추론합니다. 그 결과는 유연함이 아니라 **예측 불가능성**이며, 창의성이 아니라 **할루시네이션**입니다.

이 관점에서 보면 AUX는 UX의 반대편이 아니라 **UX가 그동안 명확히 말하지 않았던 전제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존재**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. 그렇기 때문에 AUX는 UX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상을 극단적인 조건에서 드러내는 사례에 가깝습니다. 사람이 감당할 수 있었기에 묵인되던 애매함과 해석의 여지를 에이전트는 그대로 증폭시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. **이 지점에서 AUX는 더 이상 새로운 UX의 유형이 아니라 UX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냉정한 사례가 됩니다.**


## AUX는 서늘한 UX다

그렇기 때문에 AUX는 가장 극단적이고 서늘한 UX입니다.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불친절해서 서늘한 것이 아닙니다.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. **에이전트를 위한 UX는 가장 친절하기 때문에 가장 서늘합니다.**

AUX는 감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. 무엇을 할 수 있고,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히 나눕니다. 이 UX에는 “아마도”, “어쩌면”, “이쯤이면 이해하겠지” 같은 여백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. 모든 정보는 주관적으로 해석되기보다 명료하게 판단 가능해야 하며, 모든 인터페이스는 이해되기보다 오해되지 않아야 합니다.

흥미로운 점은 **이러한 서늘함이 UX의 바깥이 아니라 오히려 UX의 가장 안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**. 사람을 위한 UX에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**일관성, 명확성, 예측 가능성**을 좋은 UX의 조건으로 이야기해왔습니다. 다만 사람은 그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불완전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.

AUX는 그 보완 가능성을 제거합니다. 유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UX의 불완전함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. 그렇기 때문에 AUX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**일관성, 명확성, 예측 가능성**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. 그런 의미에서 AUX는 UX와 같은 방향성을 공유하며, UX의 전제를 숨기지 않는 가장 극단적이고 서늘한 UX입니다.


## 접근성에서 도출한 UX의 본질

AUX를 가장 서늘한 UX라고 표현했지만 이 서늘함은 새로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. 오히려 UX가 오랫동안 말해왔지만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던 전제가 AUX라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결과에 가깝습니다. 그리고 이 전제는 사실 **접근성** 논의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습니다.

우리는 종종 접근성을 **더 많은 사용자를 포용하기 위한 설계**라고 설명합니다. **그러나 실제 접근성 설계의 과정은 무조건적으로 자유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.**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. 접근성은 사용자가 상황에 맞게 해석하길 기대하지 않고, **해석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설계에 가깝습니다.** 이러한 점에서 포용의 진정한 의미는 **확장**보다 **폐쇄**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. 

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접근성은 사람을 **해석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해석하면 안되는 존재로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**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사고력과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. 오히려 다양성과 주관적 상상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고의 파편적 확장에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. 그렇기 때문에 좋은 UX는 대상이 누구든 **해석의 여지를 제거하는 방향**으로 수렴해야 합니다.

혹자는 스크린리더 사용자, 스위치나 키보드만 사용하는 사용자, 인지 장애가 있는 사용자나 노인을 위한 디자인은 분명히 기존 UX를 확장하는 작업이며, 이를 어떻게 **폐쇄**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.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접근성을 고려한 설계가 실제로 확장하는 것은 **자유도가 아니라 접근 경로**라는 점이 드러납니다. 스크린리더를 위한 UI는 시각적 표현을 추가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**의미 구조를 더 엄격하게 드러내도록** 요구합니다. 스위치 사용자를 고려한 인터페이스는 입력 방식을 무한히 늘리는 대신 **모든 기능이 일관된 규칙과 순서로 접근 가능해야 함을 강제**합니다. 즉 접근성 설계는 **아무 방식으로나 사용해도 된다**는 확장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더라도 같은 의미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설계인 것입니다. 이는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의 확장입니다. **더 많은 사용자를 포용하기 위해 인터페이스가 허용하는 애매함을 줄이는 선택인 셈입니다.**

이런 의미에서 접근성은 개방적인 UX가 아니라 **폐쇄적인 확장**에 가깝습니다. 규칙을 느슨하게 만들어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**규칙을 더 명확하게 만들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**입니다. 그래서 접근성은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일관성과 보편성을 강하게 요구합니다.

가장 기계적인 설계가 가장 보편적인 설계라는 말은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. **사람에게도 에이전트에게도 친절한 UX는 감각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관된 구조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UX입니다.** 다만 사람은 그 규칙이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완할 수 있었고, 그래서 그 불완전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.

## 우리는 무엇을 설계하는가

이 지점에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. **우리는 무엇을 설계하고 있는 걸까요.** 유연함일까요, 예측 가능함일까요. 이번 MCP 서버 작업으로 AUX를 고민하며 느낀 것은 **이 질문들이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었습니다.** 사람의 UX와 인공지능의 UX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서로 다른 조건에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. **둘 모두 해석의 여지를 줄이고 일관적이며 예측 가능한 경험으로 수렴해야 한다는 지향점은 동일했습니다.**

그래서 지금 우리가 설계하고 있는 것은 더 친절한 화면과 정보 구조, 더 똑똑한 에이전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. 사람과 인공지능이 같은 규칙 위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, 해석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구조, 그리고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설계 단계에서 떠안는 인터페이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.

UX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용자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 아니라 **해석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**일지도 모르겠습니다.

긴 생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. 다음에는 좀더 **_개발자스러운_**, MCP 서버 구축 일지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. 감사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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